
아이의 영재성이 발견되는 순간, 부모의 마음은 벅차오르기도 하고 동시에 무겁기도 합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지?', '평범한 학교에 보내도 괜찮을까?', '혹시 조기교육을 시켜야 하나?' 다양한 고민이 꼬리를 물죠. 이 글은 실제로 영재성 있는 아들을 둔 한 부모의 이야기와, 그 과정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모의 기대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속도와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여정을 통해, 같은 고민을 가진 부모에게 작은 지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재 아이라고 처음 느꼈던 순간들
아이가 세 살 무렵,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다른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퍼즐을 단 한 번 보고 맞추거나, 문장을 길게 말하고, 그림책 내용을 통째로 암기하기도 했죠. 처음엔 단순히 언어발달이 빠른가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또래들과 다르게 깊이 있는 질문을 하고, 수 개념과 시간 개념을 빠르게 이해하면서 ‘이 아이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영재 아닐까?’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부모로서 쉽게 단정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간단한 검사와 상담을 받았고, 결과는 ‘지적 영역에서 상위 1% 수준의 사고력과 추론능력 보유’였습니다. 놀랍기도 했지만, 기쁘기보다는 막막함이 먼저 몰려왔습니다.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일반적인 유치원, 일반적인 초등학교, 과연 괜찮을까?
아이의 감정과 관계
처음엔 조기입학도 고민했습니다. 아이가 학습적인 면에서는 이미 초등 2~3학년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리상담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학습보다 중요한 건 사회성, 정서발달, 감정 조절 능력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뭔가 크게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영재성’이라는 말에 휘둘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죠. 그날 이후 우리는 아이의 ‘빠름’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편안함’과 ‘균형’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조기입학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초등 입학 전까지 감정 조절 훈련, 친구 관계에서의 갈등 해결 방법, 기다림과 양보를 익힐 수 있도록 가정에서 다양한 놀이와 역할극을 시도했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일부러 많이 만들었습니다. ‘학습은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지만, 무너진 정서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전문가의 말이 깊이 남았습니다. 이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환경보다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더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입학 후에도 별도로 영재교육원이나 학원을 서두르지 않았고, 아이가 ‘원할 때’, ‘즐거워할 때’ 시도하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입학 후, 선생님은 아이가 질문이 많고 창의적인 사고를 자주 드러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간혹 친구들과 충돌하거나, 수업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이와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단순히 “참아야지”라는 말 대신, “어떤 부분이 힘들었어?”, “그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식의 질문을 통해 스스로 감정을 돌아보고 표현하게 했습니다. 영재인 아이를 키운다는 건 ‘지적 능력’ 하나만 관리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서적 안정’, ‘사회적 관계’, ‘자기주도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언제나 사랑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성적이 좋든 아니든, 남들보다 앞서가든 아니든, 언제나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 아이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영재라는 이름은 특별해 보이지만, 그 안의 아이도 여전히 엄마를 찾고, 친구를 좋아하고,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 ‘특별함’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중요한 것은 빠른 학습보다 탄탄한 정서, 안정된 관계, 스스로를 믿는 힘입니다. 영재 아동의 부모가 된 지금, 저는 더 이상 조기교육이나 스펙을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아이의 감정과 삶을 먼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있다면, 아이를 바라보는 속도를 조금만 늦춰보세요. 그 안에 이미 충분한 재능과 가능성이 자라고 있으니까요.